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힘든 해도 있고 좋은 해도 있다.
그런데 아직은 나는 지난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해마다 조금씩은 성장하는 느낌이다.
뭔가 영 아니라고 생각이 되면 맺고 끊을 때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것이 진정 값진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희생을 할 때나,
지겨운 일이지만 내 일이려니 하고 참고 할 때
나는 내 자신이 뭔가 좀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내가 내 자신을 결정하고 통제하고 신뢰하는 것이 매해 조금씩 더 나아졌다고 생각을 하기에
나는 실수나 고통을 내 삶에서 없애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가 보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 중학생인 딸아이가 같은 반 친구 중 한명이 올해까지 학교를 다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말을 했다.
왜 그러는 것 같으냐고 묻자
딸아이는 자신이 보기에 그 친구는 과거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 2년 정도 조기유학을 갔었다.
그 때 미국에서도 친구도 많지 않았고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같이 홈스테이를 하는 한국아이들과는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한국에 왔는데 불행하게도 중학교 때 따돌림을 받았다.
친구가 한명도 없이 1학년을 보냈다.
2학년 때는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자신이 미국에 있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딸은 그 친구가 막상 미국에 갔는데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게 될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한국에서 다소 적응을 해나가니까 여기에 있고 때때로 힘든 일이 있을 때 미국을 하나의 도피처,
환상으로 마음속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 딸아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친구가 상처를 받을까봐 딸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과거의 어느 시기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가지고 위로를 받는 경우
그것을 흔히 노스탤지어라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지니는 노스탤지어가 있다.
어렸을 때 고향에 있었을 때는 너무 좋았어,
고등학교 때는 좋았어, 군대에 있을 때가 좋았어,
미스였을 때가 좋았어, 신혼이었을 때가 좋았어
저마다 자신만의 노스탤지어가 있다.
돈이 백억 있었을 때가 좋았다는 이도 만난 적이 있고
지금은 이혼한 전 부인과 살았을 때가 좋았다는 이도 만났을 때가 있다.
이렇게 노스탤지어에 집착을 하는 이는 그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당시로 돌아간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명절 때는 고향에 가고, 동창회를 하고, 군대친구를 만나고, 미스였을 때 입었던 옷을 만지작거리고,
부부싸움을 한 날에는 결혼 앨범을 뒤적인다.
그러다가 보면 그 때로 다시 돌아가서 인생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옛날에 20년 전에 보건지소에서 일을 할 때 시골 면단위에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지방유지분이 있었다.
일본에 바지락을 수출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밤늦게 물건을 넘기고 은행에 저축을 못해서 가지고 온 현금이 서랍장에 넘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돈을 아이들이 몰래 주워서 근처 문방구에 가서 문방구에 있는 물건을 전부 다 달라고 해서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부모에게 알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모든 돈을 잘 투자해서 그 분은 지방에서 거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지방유지분이 하루는 자신은 이 돈을 모두 포기하고 인생을 다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불행한 딸 때문이었다.
한참 돈을 많이 벌고 놀러다니면서 가정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부부싸움도 잦았다.
딸도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놀러다니는데 정신이 팔려있다가 우연히 만난 건달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건달사위가 일은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돈이 떨어지면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오라고 딸을 때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 가진 재산을 다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성실한 가장의 모습으로 살고,
자식에게 신경을 쓰고,
보람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돈이 자신과 가정을 망쳤다고 그분은 말을 했다.
나는 살다가 보면 그 지방유지가 때때로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분은 삶을 과거로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그 시점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이 아닐까?
딸을 자주 만나서 위로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해서 모범이 되는 모습을 그 때부터 보였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다 보면 사위도 장인을 더 이상 돈만 가진 졸부로 얕잡아 보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딸도 아버지의 위로에 용기를 얻어서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바로 지금부터
여기에서부터 달리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강의를 나가면 인생을 시험에 비유하고는 한다.
공부는 하나도 안 해도 시험을 보면 빵점을 받을 것 같은데 시험이 연기된 경험이 다들 한두번 씩은 있을 것이다.
시험이 한달뒤로 연기되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한달 뒤에는 시험을 잘 봐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서면 그 동안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다 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 일주일전부터라도 공부를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한다.
시험이 코앞에 닥치면 초치기를 하면서 어젯밤에 공부하지 않고 잔 것을 후회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과거를 생각하면서 후회를 하지만 미래에는 지금을 생각하면서 후회하게 된다.
따라서 인생을 다시 살고 싶다면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히는 대신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결정을 내리고, 지키고, 책임져야 한다.
[출처] 인생을 다시 살고 싶다면 :
최명기(부여다사랑병원장/정신과전문의/[트라우마 테라피]저자)|작성자 artppper